나는 철학책같은 류의 책을 잘 보지 못한다. 글씨만 있으면 읽는 활자중독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책은 항상 내게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 때문인지 더 오기가 생겨서 쉬운 입문용 철학책들을 보곤 했다. 철학책들은 다른 책들에 비해 페이지가 유난히 늦게 넘어간다. 그 때문에 소피의 세계를 읽다가 포기했으며 이진경씨의 철학의 모험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오래 걸렸다. 또 집에는 아직 읽지 못한 양운덕씨의 피노키오 철학책 4권짜리가 있다.
누군가가 저런 책들도 쉽게 넘기지 못하면 철학과 인연을 끊고 살라고 했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철학이 괜히 기본적인 학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영화잡지에서 신문에서, 철학은 항상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그 때문에 입문철학책을 끊지 못하는지 모른다. 그러다 우연히 이동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 판타지 소설 재미있어 보였다.
하지만 반전이 하나 있다. 사실 이책을 빌린 건 철학개론서여서가 아니었다. 저자가 좌백이길래 집어온거다.
그의 무협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으나 블로그에는 자주 들어가봤고, 그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어왔다. 까칠하신 성격에 웬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리고 진산의 남편이라는거........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봤다고 하면 좌백님 열받을까?
나도 누구의 뭐라고 불리는걸 무지 혐오하는 사람이니까 남을 생각할 때도 그런 잣대로 바라보면 안되는데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이 궁금해졌다. 글에는 그 사람이 드러나는 법이니 이 사람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아무튼 그래서 읽게 됐다.
책의 내용은 지누라는 중학생이 괴짜 외삼촌집에 가서 이상한 여자애인 애지를 만나 책속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거다. 판타지스럽게 만들려고 나름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문체는 깔끔한 편이었고 설명도 쉽게 할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철학 책이 다 그렇듯 어려운 이야기 나오면 머리 아픈 건 마찬가지다.
한남자가 있다.이 남자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아들이다.이 남자는 누구인가? 나는 남자 형제도 여자형제도 없다.
책에는 이런 퀴즈가 수시로 나온다. 처음에는 이 퀴즈를 보고 당황해서 머리를 한참 싸매다가 답이 내 아들이라는 걸 알고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또 한참을 머리를 굴렸다. 역시 논리학책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헷갈리고 골치아프다.
그나마 이 책이 다른 논리학책보다 낫다면 잘난척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쉽게 설명해준다는 거다. 설명하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 기준에 맞추어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자주 보인다.
일부 책들은 설명하는 사람이 위에서 아래를 향해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계몽을 하고 싶은 건지 지식을 나눠주며 자기 과시를 하고 싶은 건지 알쏭달쏭한 그런 글들 말이다. 지적 허영으로 가득찬 그런 불쾌한 글들을 발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허영이라는게 꼭 스타벅스에서 커피마시고 명품을 밝혀야 허영인가? 하긴 이건 말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나에게도 지적인 허영이 있는 듯하니까. 키치적인 감성을 별로 안좋아하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것들에 많이 끌리는 편이니까. 저런 행태가 꼭 남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보면 작가의 글은 본받을 만하다. 이 책은 철학책이지만 지식의 나열이나 자랑 없이 담백하면서도 개념의 설명을 충실히 하고 있다. 논리학에 자신이 없다면 철학책만 봐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면 한번 읽어볼 만하다.
물론 논리학이라는 게 여전히 어렵고 헷갈린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웬만큼은 이해가 가능할거다. 또 이 정도는 이해해야 살면서 남에게 속지 않고 감정에 치우친 사고를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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