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참 독특한 경험이다. 불이 꺼진 실내에서 꼼짝없이 앉아서 커다란 화면을 2시간동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확실히 영화는 폭력적이다.
하지만 폭력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똑같이 사람의 배를 칼로 갈라도 수술실에서 의사가 가르면 치료이고, 노상에서 강도가 가르면 살인이다. 영화의 폭력성은 전자에 가깝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도 주고, 두뇌에 자극을 주기도 하고, 같이 본 사람과 감상평을 나눌 기회도 주니까.
그래서 극장에 자주 가고 싶었다, 또 시나리오를 쓰려면 최소 2주일에 한번은 큰 화면을 보고 감을 익혀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여건이 안됐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자주 깨졌고, 왠지 영화관은 혼자 가게 되지 않았다.
이 작품도 못 볼거라고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같이 볼 사람이 생겼다.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 큰 화면으로 집중해서 봐서인지 작은 화면에서 봤다면 못 느꼈을 여러 감정들이 밀려왔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독이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칭찬을 받은 이 드라마틱한 소재를 어떻게 살릴지 매우 궁금했다. 1등만 주목받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2등이 대접받았던 사례를 통해서 최고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영화가 될까? 아니면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처럼 선수들의 의지와 노력을 주제로 한 영화가 될까? 그도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던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야기가 될까?
결과는 셋 다 아니였다. 영화는 일상의 짐 때문에 힘든 독하고 질긴 아줌마 선수 셋이 열악한 상황에서 꿈을 이루려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꿈이 이루어질지 실패할지 모르겠는 아슬아슬한 순간. 그 마지막 순간에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력하고 있는 이 순간 지금이 여러분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라고.......그리고는 실패한다. 보일 듯 말 듯 한 희망을 하나 던져주긴 하지만 끝은 암울했다.
감동적인 플롯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일부 사람들은 울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왜 우는지조차 이해가 안됐다.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긴장감과 박진감이 떨어졌다. 마지막 경기장면에서는 감정과잉마저 느껴졌다. 가장 감동적이고 뜨거워야 할 순간에 오히려 나는 차가워졌다.
어쩌면 내가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의지나 노력만을 강조하는 걸 싫어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람들은 선수들에게 체력과 기술과 시스템적인 열세를 정신력으로 이기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건 경기를 코앞에 둔 특수한 상황이니까 용인되는거다.
올림픽이나 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신문과 방송에서는 어김없이 엘리트체육보다 생활체육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활체육을 통해 저변을 넓히고 선수층을 두텁게 해야 한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공부도 열심히 시켜서 은퇴 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훈련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지원을 늘려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옳은 방향이고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나오는 아줌마들은 정말 위대하다. 남편의 빚과 이혼, 불임등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인간승리이고 칭찬받아 마땅하고 그 정신력은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그런데 이건 정상인가?
흔히 농담으로 세상에는 3가지의 성별이 있다고 한다. 남자 여자 아줌마. 아줌마는 여성의 변종이다. 여자들은 보통 결혼을 하면서 아줌마가 된다. 밀려오는 일상의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독하고 강하고 질겨진다. 아줌마는 힘이 세다.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것도 주변을 살피는 것도 아줌마다. 하지만 한곳으로 신경이 집중되면 다른 한곳은 위축된다.
대신 그들은 섹슈얼리티와 여유, 부드러움, 자신에 대한 투자 등 많은 걸 잃는다. 영화는 지독한 아줌마들이 자기 꿈까지 추구하는걸 보여준다. 멋지고 대단한, 세상의 중심인 아줌마를 보여주며 그녀들을 찬양한다. 자신을 포기하는 게 싫어서 아줌마를 거부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아줌마가 되라고 압박하는 듯하다. 봐라 아줌마라고 꿈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엘리트스포츠만 추구하는 정책으로는 생활체육을 키울 수 없다. 저 아줌마들은 슈퍼우먼이다. 모두가 저렇게 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고 억압이었다. 여성적 연대와 리더쉽등 여성적 가치를 높이 사는 모습 등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지워진 짐을 덜어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시스템을 바꾸고 과학적인 훈련을 하려는 감독의 시도를 희화화하는 것만 봐도 그 점은 분명하다.
또 장보람이라는 어린 천재선수는 무릎부상을 당했는데도 결승전에 출전한다. 이제 아줌마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도 독해지라는 걸까?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각자 열심히 치열하게 죽도록 노력해라.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말이 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이명박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나보다.
아줌마를 찬미하는 영화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아줌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경제력있는 싱글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도 나와 비슷하겠지.
왜 우리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야 할까? 그냥 나이 들어가는 여자, 남자가 되면 안 될까? 삶은 꼭 저렇게 악착같고 힘든 것이어야 하나?
요즘 나이 드는 데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아줌마가 아닌 그냥 나이든 여성,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개인이 불행해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뭔가 행동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게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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