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요리 포스트는 양갱이었다. 한참 아플 때도 잠깐 기운이 나면 요리를 했다. 하다보니 내가 만든 결과물을 사진으로 보관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맛있게 될 경우 뭘 얼마나 넣었는지도 기록해놓고 싶어졌다.


  여러번의 실패 끝에 양갱을 성공한 후에도 웬지 뿌듯해졌다. 디카로 사진을 찍어 간단한 이야기와 함께 블로그에 올렸다. 가끔 책감상이나 영화평을 올리던, 주인에게도 버림받았던 한산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글이 올라간 후 방문객도 늘어나고, 댓글도 많이 달리더라.


  놀라웠다. 처음에는 내가 쓴 글에 반응이 오는 게 신기했다.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걸 즐기게 됐다.


  그 후로는 블로깅이 힘든 일상을 견디는 작은 기쁨이 되었다. 기운이 나면 다른 요리블로그들은 어떤가 구경다니기 시작했다. 네이버에 있는 유명 요리블로거들은 다들 하나같이 다정하고 친근한 말투를 쓰고 사진도 잘 찍었다.


  저렇게 되고 싶었다. 온라인으로 사진 강의를 들었다. 조금 건강해지자  과정샷을 찍기 시작했고, 말투도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고 바꿨다. 사진도 더 배우고 없는 돈을 털어 카메라도 새로 샀다. 요리만 올리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영양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멋진 에세이도 쓰고 싶었다.


  중간에 별별 일이 다 생겨서 글도 규칙적으로 못 올렸으면서도 마음에는 부담이 쌓여갔다. 더 깔끔하고 좋은 글, 더 건강에도 좋고 맛있는 레시피, 더 예쁜 사진, 그렇게 내안의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점점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슬럼프에 빠진 거야, 곧 괜찮아질거야 하고 자신을 위로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머릿속에 엉긴 생각은 풀릴 줄 모르고, 써야할 글은 쌓여만 갔다.


  결국 고무줄이 끊어졌다. 어느 순간 모든 게 지긋지긋 해지면서 다 때려치고 싶었다. 평생 문어체를 사용하다 구어체로 쓰려니 너무 힘들었고 가진 능력에 비해 눈이 너무 높았다. 내 안의 완벽주의는 그동안 겨우 이거밖에 못하냐고 끊임없이 나를 다그쳐왔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하는데도 정도가 있나보다. 결국 나는 뻗어버렸다.

 

  내가 이걸 왜 시작했더라?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 가봤다. 다행히 이사하면서 옛날 글을 잠궈 놓긴 했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맨 처음에 썼던 글을 다시 봤다.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재미있어하는 내가 보였다. 블로그와 첫사랑에 빠졌던 그때의 느낌, 그 행복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왜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도 이렇게 말했다.


  “ 나 다시 돌아갈래.”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는 잃지 말아야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LOG main image
낙서 혹은 잡담 제목에 걸맞는 가벼운 이야기들 by 현슬린

카테고리

가볍게 즐기는 맛있는 인생 (35)
착한 빵집 (0)
재미있는 영화/드라마 (8)
즐거운 독서 (10)
슬린의 이야기 (9)
Total : 38,280
Today : 65 Yesterday : 107